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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위한 삶, 사명을 위한 삶

글쓴이 : 신시내티 한인 … 날짜 : 2017-03-20 (월) 10:53 조회 : 93
설교일 : 3.19.2017
설교자 : 고은종 목사
본문말씀 : 사사기 16:15-22)



3-19-2017   자신을 위한 삶, 사명을 위한 삶 Life for myself, life for mission  (사사기 16:15-22)

 이번 토요일 아침에는 베다니 하우스에 나가 여성 홈레스들을 섬기게 됩니다.  수년 동안, 금전적으로 도우시는 분,  금요일에 물품을 구입하시는 분,  주로 흑인 여성들과 12세 미만의 어린 아이들이 수용되어 있는 베다니 하우스 쉘터에서 그들을 위해 브런치를 준비하시느라 수고하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약하고 불쌍한 지극히 작은 자.  홈레스를 섬기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홈레스가 되는 원인은,  오랜 기간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실업),  사업 실패로,  그런가 하면 가정 폭력과 해체 (가정문제) 등이 요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홈레스처럼 인생이 추락될 때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공부에서 자신감을 잃고 갈등할 때가 있고,  부모는 자녀 양육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모르고,  직장인에게는 직업의 현장에서 많은 스트레스로 힘들어 하고,  사회에서는 인간관계에서,  경제력에서,  건강에서도 자신이 없어,  홈레스와 같이 갈 곳을 몰라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 어떤 사람은 다시 일어나 칠전팔기 재기하여 인생을 아름답게 마감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창조 하실 때,  사람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각 사람에게 주신 특별한 재능(은사)가 있고 하나님의 뜻하신 바 목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능력대로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에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큰 능력을 가지고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  나는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삶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있는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삶(Life Story)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처음에는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추락하는 사람들도 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은 사울이라는 사람입니다.  사울.  처음에는 겸손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외모도 훌륭했고, 사람들에게 인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식과 함께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  또한 유다라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제자로 선택 받아, 신뢰를 받고 재정(회계업무)까지 맡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동전 20개에 팔고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신앙생활 잘하던 부부였습니다.  초대 교회 멤버가 되어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러나 욕심 때문에,  성령을 속이다가 아내도 죽고 남편도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잘 나가는 것 같은데,  나중에는 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넘어지고 넘어지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성공한 듯한데 결국에는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은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잘 되는 듯 했던 자녀교육도 실패할 수 있고,  Promotion 되고 잘나가던 직장에서Lay Off 당 할 수도 있습니다.  번창하던 사업도 실패할 수 있으며,  행복하던 결혼생활도 실패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한 삶의 현장에서 인생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세상은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보다도,  넘어졌다 하더라고 다시 일어나 달리는 사람에게 박수를 더 보내는 것입니다.

 사사기 16장에 나오는 어린아이들도 아는 스토리의 주인공 삼손.   그는 한 여인의 유혹에 넘어지므로,  블레셋의 노예가 되고, 머리를 깎기 우고, 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인생 마지막 순간에,  삼손은 좌절하지 않고 사명을 다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삼손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를 위한 삶과 사명을 위한 삶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자신을 위한 삶의 결과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구별된 나실인으로 특별한 신분으로 태어났습니다.  나실인(Nazirite) '구별하다. 성별하다. 삼가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말로써,  하나님께 성별 됨으로써 다른 사람과 구별된 자를 가리킵니다.  나실인의 규칙은 민 6장에 요약되어 있는데,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고,  머리를 깎아서는 안 됐고,  시체에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써 사사가 되었고,  큰 힘을 가진 장사로 누구도 그의 힘을 꺾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강했던 삼손은 여인에게만은 약했습니다.  결국 그 약점을 관리하지 못해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져 블레셋 사람들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민족 지도자 삼손이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고,  노예가 되어 블레셋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민족의 수치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어떻게 조롱하였는가를 보십시오.  25절 이하.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블레셋 방백들이 다 모여, 삼손을 조롱하며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광경입니까?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어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사람이 짓밟히는 장면입니다.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16: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16: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왔던 삼손하나님의 영이 떠난 것도 깨닫지 못했습니다삼손은 사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의 삶이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을까요?  문제는 교만입니다.   신분이 보장해주겠지! 자기의 지위,  자기의 힘,  자기의 인기가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믿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삼손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가위를 대지 않은 긴 머리카락이 힘의 원천이었을까요?  아니면 나실인이라는 가문과 출신 성분에 있었을까요?  자신의 능력에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삼손의 힘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나의 재능과 은사가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 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신다면 가장 처참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능력이라는 것은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다윗이 가진 작은 돌맹이일지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총알(GPS가 장착된 미사일)처럼 사용하십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 갔지만 총리가 된 것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 39:2~3)"라고 말씀합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통하여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내게 했던 것은 모세의 힘이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실패의 현장에서 다시 일어나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회복케 하시사 다시 한 번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삼손은 지금 비참한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모든 것이 자신의 힘으로 된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왔던 삼손.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맛 잃은 소금이 되어 거리에 밟히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22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다시 자라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위기의 순간에 사명을 회복하는 삼손.

 많은 경우에 사람이 실패하면,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잃어버린 것에 집착하고 원망하며 낙망합니다.  그러나 삼손을 보십시오,  삼손 앞에는 다 적들입니다.  모두가 조롱하는 자들입니다.  한 사람도 자신을 도와 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포기해야 할 때,  삼손을 도와주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마지막 순간에 예비해 주신 소년입니다.  여호와 이레입니다.

 26.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모든 사람이 나를 배신하는 것 같고,  모든 사람이 나를 떠나는 것 같지만,  나를 돕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게 남아 있는 것이 하나님께 붙들리면,  위기가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주님 손에 들려졌을 때,  오천 명을 먹이고도12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만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십자가를 넘어,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삼손은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볼 수도 없습니다.  그의 큰 힘도 다 묶여 있습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삼손에게는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말할 수 있는 입술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입술로 무엇을 했을까요?  기도한 것입니다.

 28.  "부르짖어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소서"

 자기 잘못을 회개하며 부르짖었을 때,  신전이 무너졌습니다.  눈이 뽑혔던 삼손에 의해,  구경하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감기게 됩니다.  조롱하는 사람들의 입술이 멈추게 됩니다.  조롱의 눈길이 사라집니다.  자기의 힘으로 살았을 때 했던 일보다,  마지막 죽음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힘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주님의 손을 잡는 방법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얻는 길입니다.  기도할 때 감옥 문이 열리고,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립니다.  기도할 때 마귀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고 맙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도 기도의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삼손이 몰락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아주 서서히 넘어졌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들릴라의 유혹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그를 무릎 꿇게 한 근본적인 것은 죄입니다.  죄는 승승장구하는 인생에 구멍을 내버리는 것입니다.  삼손은 힘이 없어서 넘어진 것이 아니라,  죄의 유혹에 넘어진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 실패하는 성도들을 보면,  아주 지극히 작은 것에 의해 넘어집니다.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릴 때 죄를 가지고 넘어뜨리는데,  죄 같지 않은 것처럼 아주 작은 것부터 미혹을 하는 것입니다.  작은 구멍이 큰 둑을 무너뜨리듯,  나의 약점을 파고드는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삼손은 이성에게 약했습니다.  한 기생을 보고 그 집에 들어갔습니다.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달려드는 들릴라에게,  블레셋 사람들이 두려워 했던 삼손은 여지 없이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유혹을 가리켜 '내 팔꿈치에 있는 마귀'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유혹은 항상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무엇이 여러분을 유혹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들릴라는 무엇입니까?  들릴라가 사람일 수도 있겠지요.  다른 어떤 것들이 들릴라고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자기를 위한 삶을 살았던 삼손은 지나온 날.  작은 유혹에 넘어져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버렸습니다.  인생을 낭비하였습니다.  이제 인생 끝자락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명을 다하는 삶을 살려면,  넘어지기 쉬운 약점을 보완해야 합니다.  그 약점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약점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혹시 그 약점에서 넘어졌다면,  즉시 회개하고 다시는 그 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삼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회개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그의 기도를 보면 얼마나 절실하게 회개하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라는 말을 볼 때,  과거를 뉘우치는 흔적을 보게 됩니다.  이제야 자신의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그는 깨닫고,  그의 비참한 현실이 자신의 잘못인 것을 느끼며,  '오 주여, 지나온 날을 후회합니다.  회개합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옵소서.'  간절한 기도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게 인생 끝자락에서도,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도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