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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왕으로 오신 예수님

글쓴이 : 신시내티 한인 … 날짜 : 2017-04-15 (토) 00:08 조회 : 145
설교일 : 4-9-2017
설교자 : 고은종 목사
본문말씀 : 막 11: 1-10



4-9-2017  내 마음에 왕으로 오신 예수님 (Jesus Came Into My Heart As My King)   11: 1-10

 

    이 시간, “내 마음에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주님을 여러분의 마음에 King으로 환영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KingKing 되게 하시는 King Maker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것을 기념해서 지키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번 한 주간을 고난 주간(Passion Week)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자,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흔들며호산나하며 주님을 환영한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사람들로부터 환영과 영광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맞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1.     그러므로 내 마음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모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공관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인데, 21:4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말씀대로 오셨고 말씀대로 사셨습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공관복음이란 무엇인가를 잠깐 보도록 하겠습니다. 공관복음(Synoptic Gospels), 고대 그리스어의 ‘syn (함께)’‘opsis ()’이 합쳐진 말로써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일컫는데, 마태복음은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마가복음은 만인을 섬기기 위해 종으로 오신 예수님. 누가복음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각각 다른 측면에서 보았지만 공통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공관복음서입니다.

아무튼 마 2장에 보면,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동방박사들이 경배하려고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고 물었을 때 예루살렘에 소동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헤롯대왕이 두 살 아래 모든 남자 아이들을 죽이는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은 공생애 중 당신이 메시아 되심을 감추어 오셨습니다. 사람들이당신이 누구인지 밝히라고 물었을 때에도 예수님은 침묵하셨고 사람들이 왕으로 삼으려고 했을 때는 조용히 그곳을 피하셨습니다.

그러시던 예수님이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예루살렘에 오셔서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이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유월절이 되면 각 나라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실 때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길에 펴기도 하고 또 손에 들고 소리쳤습니다.  본문 9,10절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도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호산나'라는 말은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열렬히 환영하는 군중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예수님을 향해서 백성들이 환영하는 것을 그치게 하라고 했을 때에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19:40). 만약 사람들이 찬양하지 않으면 돌들이 찬양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호산나 찬송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이심을 나타내며 죄에서 구원하실 구세주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매년마다 맞이하는 종려주일이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메시아, 나의 구세주이심을 확신하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며, 나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실 구세주이심을 믿고 감사하는 절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9:9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니라.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군중들은 예수님을 향해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영접한 것입니다.  그들의 의도는 매우 이기적인 목적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나중에 그들은 자기들의 이기적인 목적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자저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라고 소리쳤습니다.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실 때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정말로 기뻐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무리의 환호를 받으면서도 슬퍼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영하는 무리들의 속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많은 사람들의 환영은 사실은 예수님을 왕으로 환영한 것이 아닙니다.  1:11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시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다는 말씀대로 입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을 진정한 왕으로 영접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욕구를 채워 주실 조건부 환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친히 몸 버려 피 흘려 죽으시고 섬기기 위해 오신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죽음과 사망을 가져오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육신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 사망과 저주에서 구원을 얻게 되었으며 병들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구원하시려고 겸손하게 섬기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참으로 초라하고 흠모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53:2~4 에는 예수님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러나 그 분은 온유와 겸손으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잘 아시는 나폴레옹은 “나는 총과 칼로 세계를 정복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베들레헴에서 나신 예수, 십자가에 죽어 간 예수는 오직 사랑으로 세계를 정복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 평화의 왕, 고운 모양, 풍채,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세계를 통치하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통치하실 예수님을 많은 사람들이 만왕의 왕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지를 않을까요?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King)이신 그 분을 내가 (King Maker)로써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지배를 받고 말씀대로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님의 말씀대로 King Maker로써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시간과 물질과 수고가 없이는 King이신 하나님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1:10-13에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모여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니라." 그 분을 영접하는 사람(King Maker)들에게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진정으로 그 분을 왕으로 맞이하고 그분에게 기쁨이 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King Maker로써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종려주일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3.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들

종려주일은, [내 마음에 왕으로 오신 예수님] [나는King Maker입니다] 다시 한번 고백하는 주일입니다. 만왕의 왕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 달리시고자 오신 날입니다.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 당했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렸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우리는 예배드릴 때 어떤 마음으로 예배 드리십니까? 나의 예배는 주님께, 나의 왕 되신 그분이 기뻐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 사람이 바로 여러분이시기를 소망합니다.

해마다 맞는 종려주일이지만 날 위해 고난 받으신 주님을 묵상하며,  [성경 이해와 실천의 비결 : There + Then = Here + Now],  주님께서 나의 왕 되심을 다시 한번 고백하며 우리 마음에 묵은 죄를 털어내고(성전 청결) 왕이신 주님을 마음에 모실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풍성해지고 복된 삶이 될 줄 믿습니다.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4.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왕으로 입성하실 때 주님께 헌신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벳바게 마을 근처에 이르렀을 때에 두 제자를 마을로 보내시며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한 마리 끌고 오라고 하십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나귀 임자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와서주님이 쓰시겠답니다라고 말할 때 이유도 묻지 않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즉시 자기의 나귀를 주님의 제자들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주님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배후에 이렇게 헌신한 사람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여러분의 귀한 것을 쓰시겠다고 하실 때 순종하는 마음으로 내어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에게도 왕이신 주님께 이런 헌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5. 내 마음에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환영하기 위해 겉옷을 벗어 펼치라

주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려면 주님만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이 입성하실 때 자신의 겉옷을 길에 펴며 예수님을 환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겉옷은 신분을 상징하고 자존심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께 최고의 존경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보통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기가 힘든 사람들입니다. 논리적이지 못하고 과학적이지 못한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자존심 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손으로 못자국을 만지고 창자국을 보아야 믿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시고 도마를 향하여 내 손과 발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도마는 무릎을 꿇고 나의 주시요,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주님은 믿음의 대상이시지, 이해의 대상이 아니십니다. 믿으면 이해가 됩니다. 도마는 평소에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도마는 예수님 앞에서 그 손과 발을 확인하지도 아니하고 믿게 된 것입니다. 참 믿음의 사람들은 자존심마저도 다 포기합니다.

우리의 겉옷은 우리의 자존심을 의미합니다. 자기의 자존심까지 주님께 드리며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은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15장에 가나안 여인의 딸을 고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가 큰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나이다.”(15:22) 그런데 예수님은 여인의 이 같은 고백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응답이 없으십니다. 그 때 제자들은시끄러우니 저 여자를 돌려 보내시죠?’’ 라고 말합니다. 그 때 예수님이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자녀에게 줄 떡을 취하여 개에게 주지는 않는다.”(15:26) 이 여인은 예수님에게까지 모욕과 노골적인 비난을 받았지만 그녀는 한 발짝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15:27)하며 끈질기게 매어 달렸습니다. 그때 주님은, 네 믿음이 크구나. 네 소원을 들어 주겠다칭찬하십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자존심을 테스트한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의 자존심을 테스트 하십니다. 여러분, 신앙은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 귀신 들렸던 딸이 깨끗이 낫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 앞에서 자존심을 버리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호산나 찬송하라

주님은 찬송하며 왕으로 맞이하는 이들을 기뻐하십니다. 호산나 찬송 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호산나(Hosannas)라는 말은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외치던 군중들의 '호산나',  금요일에는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19:14~16) 하는 아우성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이 부르짖음을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지금도 이 부르짖음을 기뻐하십니다.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주님은 마 7:7~11 ASK 하라!  “구하라(Ask)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seek)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Knock) 그러면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ASK한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한 것을 차고 넘치도록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죄인인 우리는 사망의 권세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한,  사망의 권세가 우리 가정에 있는 한,  이 사망의 권세가 우리의 직장과 사회와 민족 가운데 있는 한 ...  호산나 우리를 구원하소서노래를 늘 불러야 합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호산나’ 외치며,  예수님이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크게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성도들을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메시아주님을 여러분의 마음에 왕으로 모시고,  성실한King Maker로써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King King 되게 하십시오. 이것이 종려주일의 진정한 의미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