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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할까요?

글쓴이 : 신시내티 한인 … 날짜 : 2017-05-30 (화) 07:19 조회 : 235
설교일 : 5-28-2017
설교자 : 고은종목사
본문말씀 : 마태복음 18:21-35



5-28-2017   왜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할까요?   (마태복음 18:21-35)

 

오늘 설교 본문 18:21~35절은 크게 세 단락으로 되어 있습니다첫 번째 단락은 베드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둘째 단락은 예수님의 비유셋째 단락은 비유의 결론입니다세 단락이 용서를 주제로 해서 다 연결됩니다오늘 본문 말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이나 느낌은 어떻습니까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용서가 정말 중요하구나그리고 용서도 형식으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해야 하겠구나하는 느낌과 생각이 들 것입니다옳습니다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용서를 기독교인의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쳤습니다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 당하면서도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7:60).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한 대목에서도 이런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또한 초기 한국 교회사에 등장하는 손양원 목사 이야기는 전설과 같습니다자기 아들을 죽인 공산당원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았다고 합니다여러분은 사랑하는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본성으로는 일단 용서가 잘 안 됩니다기분 나쁜 말만 들어도 화가 치밀거나 속이 상하거나 기분이 나빠집니다본문의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을 봅시다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는데도 불구하고일백 데나리온 빚진 친구를 용서하지 못했습니다참으로 뻔뻔한 사람이며 인간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그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비슷하지 않을까요?  

초기 기독교인들은 주변으로부터 억울한 일들을 많이 당했습니다신앙 문제로 인해서 직장을 잃기도 하고동네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고박해를 당하기도 하거나 때로는 순교까지 각오해야만 했습니다믿음이 약한 신자들은 이런 상황에 직면해서 신앙 자체를 포기하거나 기독교인다운 삶의 태도를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참아라용서해라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그런 강요는 오히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듭니다용서할 마음도 없고 그런 능력도 없는데예수 믿는다는 명분 하나로 꾹 참고 지내면 더 큰 병이 들 뿐입니다영혼 속에 쌓인 상처를 씻어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는 목사이기 때문에 심리학적이거나 사회과학적인 healing과 용서의 프로그램보다는 성경이 말하는 더 근원적인 길을 전해야 합니다일백 데나리온을 손해 본 사람에게 보상해주고심리적으로 위로해주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그 사람은 살아가면서 또 일백 데나리온을 손해 보는 일을 만날 것이며또 그런 일로 분노할 것이고다시 보상과 심리적 치유를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성경은 근원적으로 전환할 것을 가르칩니다그것이 일만 달란트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빚을 탕감 받은 채무자와도 같습니다이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은 사람이라고 한다면백 데나리온으로 얽히고 설키는 세상살이에서도 용서의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큰 사랑을 받은 사람은 온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지지만배신과 어려움에 시달린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미워지는 것과 같습니다일만 달란트를 탕감해 주신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은영적인 해방과 기쁨을 경험하게 되어서 백 데나리온으로 그의 영혼이 훼손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사람에 따라서 일만 달란트 탕감 받았다는 사실이별로 실감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기독교인들도 이 사실을 노골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아도 막연하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잘못은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이 하는 거니까 대수가 아니라는 겁니다물론 기독교인이 하나님 앞에서 죄책감만 느끼고 사는 건 잘못입니다일만 달란트 이야기는 심리적인 죄책감의 문제가 아니라우리의 실존에 대한 직관의 문제입니다우리는 하나님께 순전히 빚을 지고 삽니다모든 걸 공짜로 받았습니다.  

 

쉬운 예를 들겠습니다태양을 보십시오태양을 하나 만들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요일만 달란트의 수천 배수 만 배가 있어도 안 됩니다태양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극히 일부만 지구에 오는데그것이 지구의 모든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입니다정말 놀랍습니다늘 태양이 뜨고 지면서 우리 곁에 있기 때문에 그걸 누리는 게 당연하다거나태양은 자연현상이니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빚진 것은 아니라거나또는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큰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기는 하지만 자기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도 똑같이 혜택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께 빚을 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여기에서 믿음의 차이가 납니다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일만 달란트로 느낄 수도 있고백 데나리온 정도로 느낄 수도 있고아무런 느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어느 쪽이 삶을 더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태양만 보더라도 우리는 무한한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인데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 사건을 생각한다면일만 달란트가 아니라 모든 빚을 탕감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활 생명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 본문을 준비하면서마치 마태복음 기자가 속했던 초기 교회로 시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습니다억울하고 속상한 일을 당해 실족한 믿음 어린 신자들에게 마태복음 기자가 따뜻하지만 준엄한 충고를 한 것입니다그의 충고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달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안에서 부정적인 언어와 인격적인 공격악한 말들과 뒤에서 수군수군 귓속말들을 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이러한 현실에서 성도는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성도는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하실 지를 생각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심지어 어떤 성도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피해를 당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이는 성도로서 올바른 삶이 아닙니다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분을 따르는 생활을 한다면우리는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오른편 뺨을 때리면왼편 뺨도 내어 줄 수 있는 그런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니까요.

 

인간은 관계 속에 존재합니다인간이란 마치 거미줄 같이 얽혀져 있으며,그물처럼 엮여져 있습니다이 같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relationship)입니다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선한 사람악한 사람배운 사람무식한 사람들이 구분되고 증거됩니다인간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해서 인간과의 관계자연과의 관계심지어 일반 동물과의 관계 속에서 그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규정합니다.

 

인간관계의 핵심적인 단어는 용서(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주는 것)와 사랑(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용서 없이는 사랑이 없고사랑 없이는 용서가 없습니다성경적인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고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며나아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이웃을 사랑합니다이 용서의 문제를 교훈 한 것이 오늘의 본문 핵심입니다.

그렇다면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왜 용서해야 하는 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 보겠습니다.

 

1.  성도는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두 가지 관계 속에서 성립됩니다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만 달란트 용서받은 사람과 같습니다이것이 구원이요은혜입니다또 하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입니다오늘 말씀은 용서받은 사람이 나가서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했을 때,일만 달란트 용서받은 것이 무의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이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복이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나타내고그 가치와 존재가 증명되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완성된다는 뜻입니다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은혜로 남아 있고나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용서하는 사랑을 실천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예배 드리기 전에 이웃을 용서하고 먼저 화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용서/관계회복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리고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면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은혜와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6:37~38 “비판하지 말라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정죄하지 말라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용서하라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바울 사도도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심 같이 이웃을 용서해야 한다( 4:32)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놀랍고 위대하신 사랑으로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죄인의 괴수(두목)라고 고백하였습니다우리 중에 누가 죄가 없다고 나설 수 있겠습니까하루에도 우리들은 수없이 많은 죄를 범하지 않습니까그럼에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범하는 어떠한 죄라도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다 용서해 주셨으니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그러므로 주님의 구원(선물/은혜)하심을 기억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주님께서도 우리 죄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용서의 근거는 은혜와 믿음입니다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구원에 대한 믿음이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게 합니다하나님께 대한 이 같은 믿음은곧 자기 자신이 구원 받았다는 믿음과 일치합니다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해서 이웃을 사랑하고나를 사랑하게 됩니다옛날 요셉도 그의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과 형제 사랑이며나아가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입니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용서의 근거는 희망입니다희망이 있으면 참을 수 있고용서할 수 있습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부활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죄를 용서함 받고서도 다른 사람의 조그만 잘못을 용서하지 못한다면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값을 도로 받겠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 하시리라”( 6:14, 15). 성도는 다른 사람을 용서해도 좋고안 해도 좋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용서는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으로서 꼭 실천해야 하는 덕목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3.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므로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용서에는 조건이 없습니다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신 것은 그 자신이 책임을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가능했습니다용서에는 어떤 조건이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요용서하는 자의 책임으로 주신 은혜입니다그러나 왜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잘못을 범한 그 사람을 용서하면전례가 되고 습관이 되어 죄를 근절할 수 없다든지그것이 습관이 되어 상습범이 된다든지내가 예수님 같은 성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든지여러 가지 이유를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과 화평을 누리는 데 힘을 쓰셨습니다성도들이 추구해야 되는 목표가 있다면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자는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을 수가 없습니다용서하기를 힘쓰는 자만이 주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며 온유와 겸손의 주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그렇다면 우리들이 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될까요그것은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든 죄를 하나님께서 무조건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또 잘못한 이웃을 용서하는 마음이 곧 주님을 닮아가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마음에서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면 주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사실 우리는 입술로는 형제들의 허물과 잘못을 덮어주기도 하고 위로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용서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의 용서는 위선적이거나 겉으로만의 화해가 아닌 온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우리들이 온갖 죄를 용서 받은 자로서 용서하지 못할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3:13~14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요일 4:19~21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용서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그럴 수도 있어그럴 수 있지.’ 덮어주고 너그럽게 봐주는 행위입니다.  성경에서 “용서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떠나가게 하는 것입니다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할 때분한 마음을 ‘떠나가게’ 하고 자신이 입은 상처나 손실을 보상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사랑은 “해를 입은 것을 기억해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고린도 전서 13:4, 5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그대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있거든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떠나 보내고 용서하라그 때에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 것이다.”  - 톨스토이 -

 

예를 하나 들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병이 깊게 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어느 날심방 오신 목사님께서 이렇게 충고하셨습니다. “혹시 당신이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회개하십시오

그러나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용서해 주어야 할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었습니다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그는 기도하는 중에 용서해야 할 사람들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그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그들을 모두 용서했습니다그의 용서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에 자유를 주시고 몸을 치유하여 주신 것입니다예수님께서 형제가 죄를 범하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아직도 여러분은 용서를 구하는 형제자매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아직 마음 중심으로부터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그렇다면 마음에 맺혀 있는 사람들을 마음 중심에서 떠나가게” 하고용서해 보십시오그러면 용서 받는 기쁨을 알게 될 것입니다그렇게 본다면 용서는 가장 큰 선물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그러므로 가장 많이 용서한 자가 가장 많이 용서를 받는다는 사실을 믿으시고조건 없이 용서를 먼저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그러면 주님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더 큰 용서의 은혜를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아멘.